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엄마의 취미생활/에세이

여름밤

by 소녀마리아 2021. 7. 7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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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 찢어질 듯한 매미의 울음과 이글거리는 아지랑이 속에 숨이 막히는 무더운 여름이지만, 여름밤만은 낭만적이기도 하고 생기가 넘치는- 누구에게나 생각하면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추억이 있는 그런 계절의 밤이다. 친구들끼리 처음으로 떠났던 여름 휴가의 기억, 무섭게 내리는 장마철 우산 속에서 나란히 꼭 붙어서 걷던 연인과의 추억- 꿀맛 같은 휴가 또는 방학의 설렘이 있는 계절. 그 계절의 밤은 언제나 몽글몽글한 추억이 된다. 

 

  상품 백화점 붕괴. 내가 기억하는 가장 첫 번째 여름밤은 바로 전 국민이 가슴을 쓸어내리던 그 여름밤이다. 아빠는 내가 어릴 적 미국에서 오래도록 유학 생활을 하셨던 터에 여름방학에만 아빠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. 그해 여름 아빠를 어떻게 만났고 어떤 놀이를 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, 그 사건의 여름밤은 이상하게도 기억에 남는다. 엄마, 아빠, 나는 안방의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웠고 무겁고 투박한 CRT TV로 뉴스를 보았다. 빗속에서 연이어 나오는 생존자와 기적과도 같은 그 구조 현장의 생중계를 보며 나는 스르르 잠이 들었고 아빠는 잠든 나의 옆에 팔을 괴고 누워 천천히 부채질해주었다. 콘크리트에 맺힌 비 냄새, 아빠의 담배 냄새가 섞여 있었고- 그날의 구조가 어떻게 끝났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 부채질의 시원함과 그날의 향기가 잊히지 않는다. 나의 여름밤은 덥지만, 추억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밤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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